역사와 전설
인류가 처음으로 나타난 시기인 구석기시대는 옛송포면 일산읍지역에서 석기류(찍개, 끌개, 몸돌 등)가 발견되어 적어도 5만년 이전부터 고양시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으로 본다.
신석기시대는 인류 최초의 혁명인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는 시대로 일산신도시 지역(신촌초등학교 지역, 성저마을)에서 토기, 볍씨(4천4백60년전 것으로 판정), 나무열매 등 신석기 시대 농경생활 및 자연환경을 알 수있는 유물이 출토되었다.
청동기시대는 금속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대로 유적은 곡릉천, 창릉천, 원당천, 장진천 등 하천에 따라 펼쳐진 언덕진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문봉리, 화정리 지역의 지석묘군, 성사리출토 동모용범편등이 있다.
고양지역이 선사시대에 이어 역사무대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백제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고대국가로 건국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서기 475년 고구려의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성을 함락시킨 이후 고양지역이 고구려 영토로 귀속되었다. 고구려는 고양지역 내에 달을성현과 개백현을 설치하였다. 그 뒤 신라 진흥왕 16년(555)에 북한산에 순수비를 세웠으며 고양지역에 북한산주를 설치하여 군사적 요지를 삼았다.
통일신라시대에 고양지역은 한산주에 소속되었고 달을성현을 고봉으로 개백현을 우왕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 태조 23년(940)에 우왕현을 행주로 바꾸고, 별호로 덕양이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그리고 현종 9년(1018)에 고봉현과 행주현 두 현을 양광도의 양주에 속현으로 예속시켰다.
조선시대, 태조 3년(1394)에 고봉감무를 설치하고 부원현과 황조향(옛 일산읍 주엽리 일대)을 고봉현에 예속시키므로써 속현이 아닌 지방관이 파견되는 지위로 승격되었다. 태종 13년(1413) 현의 명칭을 고봉과 덕양 두현의 이름을 한 글자씩 따서 고양현이라 바꾸었다. 성종 원년(1470)에 현에서 군으로 승격하였다. 그러나 연산군 10년(1504) 지언, 이오을, 미장수 등이 국왕을 모독했다는 죄로 처벌당하면서 죄인이 살던 곳이라 하여 혁파되었다.
근대적개혁의 일환으로 지방행정제도가 자주 변화하면서 고양군의 소속이 여러차례 바뀌었다. 1914년 고양군은 12개 면 155개 리로 구성되었고, 고양군청은 지금의 충정로1가로 이전하였다. 1936년 용강면, 연희면, 한지면이 한성부로 편입되고 고양군청은 지금의 동대문 부근인 을지로 5가로 옮겨졌다. 1945년 대한민국 정부수립후 서울시 행정구역 팽창에 따라 일부 면이 서울시에 편입되어 고양군은 원당,벽제,신도,지도,송포,중면의 6개면만 관할하게 된다. 1961년 8월 군청을 서울시에서 원당면으로 옮겼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벽제, 지도, 화전, 일산, 원당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능곡,원당,일산을 중심으로 도시화작업이 이루어졌다. 이후 1989년 4월에 일산신도시 건설계획이 발표되면서 옛 일산읍 일산리, 마두리, 장항리, 백석리, 주엽리 일대에 560여 만평의 일산 신도시 건설이 시작되었고 이어 중산, 탄현, 성사, 화정, 능곡,행신지구의 택지개발지구가 추가로 발표되면서 마침내 1992년 2월 고양시로 승격되었다.